17. 12. 3.

LABYRINTH - [폐기]



찰칵
 
반복되는 상황에 조금 넌더리를 내면서 문을 밀었다. 붉은 방 이래로 다른 색으로 차있는 방을 지나왔지만 이전 방들과 크게 차이가 있지 않았다. 그랬기에 당연히 이번에도 또 똑같은 방, 실험실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번만큼은 완전히 색다른 장소였다.
 
 
말 그대로 실험실에 어울리는 장소였다. SF영화에서 볼법한 거대한 벽 모니터와 슈퍼 컴퓨터처럼 생긴 기계 덩어리들이 양 벽에 자리 잡았고, 은은한 녹색 빛과 푸른 빛으로 내용물을 비추는 인큐베이터가 몇 개인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내 앞으로 죽 늘어서 있었다.
 
이제야 정말 실험이 시작되는 건가 싶어 긴장하고 있을 때 목소리가 들렸다.
 
“A에서 루트 B로 건너 온지 9시간 17분경과. 특이사항 없음. 변수 창출 실패. 변수 수속에 따라 루트 B의 끝에 도달. 7413번 째 실험 종료.”
 
눈앞에 나 외의 다른 사람이 보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9시간 17분 만의 다른 사람인 셈이었다. 그가 B 박사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나를 가둔 사람과 한패임은 알 수 있었지만 그런데도 9시간 동안 비정상적인 곳에서 혼자 있었다보니 그조차도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런 감정은 일순간에 불과했지만.
 
이제부터 실험 시작이 아닌 건가? 내가 지나온 건 아무것도 없는 방뿐이었어.”
 
이자에게 여기에 가둔 목적이나 인권에 대해서 실랑이 해봐야 의미 없었다. 딱 봐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자는 나를 사람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그런 사람에게 사람의 권리를 주장해봐야 의미 없었다. 그저 지금은 그가 흥미 있어 할 만한 내용을 꺼내서 정보를 캐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니, 실험체 7413. 실험은 이제 끝이야. 너는 방마다 아무것도 없다고 했지만 사실은 이것저것 있어. 네가 찾지 못한 거고 그걸로 실험은 종료다.”
 
이것저것 있다고? 마치 내가 찾기를 바랐던 것 같은 말이군.”
 
, 이번 개체는 확실히 주의 깊은 편이군. 역시 동일 조건하에도 분명 변수가 생성되긴 해. 하지만 글렀어. 7413, 너 개체는 어느 정도 변수를 가지고 있지만 그마저도 수렴 범위 내의 변수일 뿐이다. 수렴한다는 사실은 이미 확증 되어 있으니 너의 실험은 그 사실을 뒷받침 해주는 실험 횟수 1에 불과하군.”
 
수렴? 변수?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알 것 없다. 너는 폐기되니.”
 
!
 


그의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도 전에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불타오르는 듯 한 고통에 아래를 내려다보자 옷의 배 부근부터 피가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총에 맞았다.
 
! !

 
곧 이어 가슴과 어깨 부근에 똑같은 고통이 올라왔다. 과연, 폐기란 이런 건가.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서 쓰러지자 권총을 손에 들고 있는 B박사는 흥미 없다는 듯 뒤돌아서 걸어가고 있었다.
 
폐에 맞은 건지 기도에 피가 차올라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꾸역꾸역 올라오는 피를 입에서 흘리며 흐릿해진 시야로 B박사의 자취를 따라갔다. 그가 인큐베이터 앞에 서있는 걸 보았을 때야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나였다.
 
알몸의 내가 그 안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하하, 7413째 실험체라는 건 이런 의미인가? 나란 사람은 여기서 7413번이나 같은 결말에 도착한 건가?
 
어이, 7414번째 나. 너는 꼭 성공해라. 이 망할 자식들에게 꼬...........